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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바래길 구운몽길 9코스, 앵강다숲길 10코스

by 고오메 2023. 7. 21.

남해 앵강이다숲길

 

구운몽길 9코스

소설 ‘구운몽’의 저자 서포 김만중의 유배지였던 노도를 바라보며 걷는 구간이 많아 ‘구운몽길’이라고 부른다. 남해 바래길 탐방 안내센터(2.2km)-원천항(2.9km)-벽련(2.0km)-두모(2.8km)-대량(4.1km)-상주 해변(2.4m)-금포(1.2km)-천하마을. 총거리 17.6km. 남해 바래길 탐방 안내센터에서 출발해 걷다 보면 두모마을 앞에서 한층 더 가깝게 다가와 있는 노도를 볼 수 있는데 섬이라는 불리는 이곳에는 서포 문학관, 작가창작실이 있다. 노도에서 벗어날 즈음에는 상주 은모래비치와 천하 몽돌해변이 보인다. 남해 최고의 상주 은모래비치는 그야말로 품격이 있다. 발밑에 밟히는 모래는 입자가 작아서 부드러운 스펀지 같은 느낌이 들고 얕은 바다가 상당히 먼 거리까지 펼쳐져 있어 안전한 물놀이도 가능하다. 백사장 면적 54만 4500㎡, 길이 2㎞에 달하는 이곳은 한려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이 코스에는 또 수천 년 전 인위적으로 새긴 것으로 보이는 ‘서 불과 차’라는 신비한 석각이 있고, 400년 전 멀리 경기도에서 따뜻한 남쪽을 찾아온 사람들이 정착한 양아리 소량·대량마을 집성촌도 볼 수 있다. 금산과 상주리 사이의 계곡에 있는 음성 굴 쌍홍문도 볼거리다. 구름 위를 걷는 듯한 꿈결 같은 길이 등장하는가 하면 원시림처럼 어두운 구간을 지나기도 한다. 원시림에선 빈틈으로 찬란하게 쏟아지는 태초의 빛 내림을 가끔은 목격할 수도 있다. 남해 바래길 탐방 안내센터에서 나와 연꽃 테마공원 사이를 지나 돌이키기 훌쩍 커버린 갈대숲이 연못을 뒤덮고 있다. 곧바로 나타나는 신청 앵 간다 숲 속에는 가족 혹은 친구끼리 캠핑을 즐길 수 있는 시설들이 조성돼 있다. 남해 자동차 전문 운전학원을 지나고 곧이어 원천마을이다. 두모마을에서 김만중의 노도가 가장 가깝게 보인다. 그는 노도에서 구운몽(九雲夢)을 쓰지 않았다. 당나라 대 인도에서 온 육관대사(六觀大師) 제자인 성진(性眞)이 양소유로 환생해 여덟 선녀의 확신인 8명의 여인과 연을 맺고 세상에 이름을 떨치면서 부귀영화를 누리지만 깨어 보니 꿈이었다는 내용이다. ‘구운몽’에서 구(九)는 성전과 팔선녀를, 운(雲)은 인간의 삶을 나타냈다 사라지는 구름에 비유한 것이다. 아홉 구름의 꿈, 아홉 사람이 꾼 꿈이라는 의미이다. 인간의 부귀영화가 한낱 꿈이라는 얘기다. 양아리 소량·대량마을을 잇달아 지난다. 이 마을에 얽힌 사연이 재미있다. 경기도 임진 강가에도 양아리가 있는데 약 400년 전 이곳 주민들이 따뜻한 남해로 이주해오면서 양아리라는 지명을 그대로 썼다. 본향을 그리워하는 주민들의 마음이 지명에 배어난 것이다. 1953년 양아리에서 분리된 작은 마을이 소량, 큰 마을은 대량이다. 협동심이 강한 양아리 주민들은 가뭄이 들면 마을 제일 높은 천왕산 상봉에 불을 피워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고. 1991년 범죄 없는 마을, 2006년 담배 연기 없는 마을 등 일찌감치 선진적인 마을로 이름이 났다. 또 이곳에는 남해 양아리 석각(石刻)도 유명하다. 도 기념물 제6호인 석각은 두모마을 뒷산 금산 부 소 암의 바위에 새겨져 있는 특이한 그림문자이다. 전하는 말. 방사(方士)‘서불’이 중국 시황제 명을 받아 삼신산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동남동녀 수천 명을 데리고 남해 금산에 당도했다. 불로초 따위는 없다는 사실을 일찍부터 알았던 서불은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고 그냥 놀다가 이 석각을 새긴 뒤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단다. 반론도 있다. 시황제 때는 이미 한자가 사용됐기에 그 이전의 고문자(古文字)라는 것이다. 아직 무슨 뜻인지 해독되지 않고 있다. 마을을 지날 때 담장에 비슷하게 만들어 새긴 석각을 볼 수 있다. 대량마을 가운데를 가로질러 임도를 타고 산에 오른다. 금산이라는 걸출한 명산이 병풍처럼 울을 만들고 은은하게 반짝이는 고운 모래와 더위를 막아주는 아늑한 송림이다. 은모래비치 입구에 ‘밤배’ 노래비가 서 있다. /검은빛 바다 위를 밤배 저 밤배 무섭지도 않은가 봐 한없이 흘러가네/밤하늘 잔별들이 아롱져 비칠 때면/작은 노를 저어 저어 은하수 건너가네/끝없이 끝없이 자꾸만 가면/어디서 잠이 들엔가…’ 잘 알려진 대로 ‘밤배’는 가수 ‘둘 다섯’의 대표곡. 서정적인 멜로디와 시적인 가사가 너무 좋다. 이두진의 성을 따 ‘둘’, 오세복(2021 작고)의 성을 따 ‘다섯’을 합해 ‘둘 다섯’이라고 명명했다. 당초 오세복 작사·작곡으로 알려졌지만 2005년께 이두진이 “사실은 자신이 썼다”고 고백했다. 그는 1973년 대학생 시절, 금산 보리암에 묵게 됐는데 그곳에서 내려다본 상주 해수욕장, 가녀린 불빛을 달고 거친 바다를 건너는 조각배의 풍경에 감흥을 받아 곡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가사는 무명의 음악 선생님이 쓴 것이라고도 했다. 이후 남해에서는 상주에 이러한 사연을 담은 노래비를 세웠다. 초승달 같은 상주 비치를 뒤로 하고 고개를 넘어간다. 크고 작은 몽돌이 깔려 있는 천하 몽돌해수욕장은 깨끗함이 좋아보인다. 배가 없는 데다 오염원이 적기 때문. 금산 골골에서 모인 물이 바다와 만나 깨끗함이 상승효과를 낸다. 도로변에서 보이지 않아 아는 사람만 찾는 보석 같은 조용한 해변이다. 1년 중 한 번, 즉 7월 말부터 한 달간 밀물과 썰물이 드나들면서 먼바다에서 모래를 끓고 들어와 몽돌해변 일부를 덮어 몽돌 백사장이 형성되는 때가 있단다. 구운몽길은 이 천하 몽돌밭에서 끝난다.

 


앵강이숲길 10코스

가천다랭이마을(3.9km)-홍현 해라우지 마을(3.7km)-두 곡 월초해변(3.3km)-미국마을(3.3km)-화계(1.5km)-남해 바래길 탐방 안내센터. 총거리 15.6km, 걷는 시간 6시간 30분 내외, 난이도 별 3개. 앵 간다 숲길은 ‘꾀꼬리 눈물 강’이라는 감성적인 이름을 가진 앵강만 해안을 따라가는데 중간중간에 해수욕장이 줄지어 있고 바다 쪽에 석방렴을 비롯한 노도와 섬들, 내륙 쪽에 걸출한 바위 봉우리 호구산이 보인다... 그곳에 서포 김만중의 유배지 노도가 있다. 그는 충렬고에 김익겸의 아들로 조선 왕조와는 사돈 간이었던 인물인데 배경을 바탕으로 훗날 공조판서, 대제학 등 고관대작을 지냈다. 숙종 15년(1689)에 관직이 박탈돼 노도에 위리안치됐다. 이 코스와 함께하는 호구산(618m)은 금산 설흘산 망운산과 함께 남해를 대표하는 산이다. 호랑이가 누워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해서 그렇게 부르는데 한자 원숭이 납 ‘납산’이라고도 부른다. 그 품에 금산에서 옮겨온 것으로 알려진 명찰 용문사가 있고 성남초교가 있고, ‘다랭이마을 암수바위’에서 출발해 응봉산에서 내려온 물길을 따라 바다 쪽으로 내려가면 몽돌해수욕장이 나온다. 해수욕은 불가하나 물이 빠질 때 고둥과 소라를 잡을 수 있어 걷다가 잠시 내려가기도 한다. 왼쪽으로 틀어 10분 정도 진행하면 거대한 벼랑 아래로 길이 이어지는데 자연 지형을 이용해 만든 길인데 머리 위에도 낙석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낭떠러지 발아래에도 흰 포말을 일으키며 부서지는 파도가 있어 잠깐 어지러움을 느낀다. 조금 덥다고 느껴질 때 칡넝쿨 동굴로 들어간다. 10여분 정도는 그늘이다. 파도가 수만년 동안 해안절벽을 줄기차게 때려 동굴이 된 협곡을 우회하듯이 분대 초소를 차례대로 지나면 홍현 해라우지 마을 해안에서 석방렴을 만난다. 석전(石箭) 또는 석제(石堤)라고도 부르는 석방렴은 바다에 돌담을 쌓아 밀물과 썰물의 자연적 원리를 활용해 오징어 멸치 새우 전어 기타 잡어를 잡는데, 남해사람들이 바래는 조금 더 쉽게 하기 위한 방편인데 원시어법이라 해도 바위 밑에 직접 손을 넣어 잡는 것보다는 지능적으로 잡을 수 있다. 길은 남해자연맛집 남해 전복영어 조합법인 앞으로 이어지고, 해안을 떠나 송림을 가로질러 남해 남성초등학교부터 앞으로 간다. 학교는 1964년 10월 7일 개교 후 1994년 3월 1일 폐교할 때까지 30년 동안 졸업생 817명을 배출했다. 지금은 대성그룹 남해연수원으로 바뀌었다. 곧 나타나는 3층짜리 언덕 위에 아름다운 집은 폐교의 새주인 대성그룹 영빈관이었다. 바래길은 산과 언덕을 돌아 다시 해안으로 내려간다. 2시간 만에 이 코스 최고의 아름다움, 월포·두 곡 해수욕장으로 간다. 완곡한 해안선을 따라 깔린 깨끗한 모래, 잔잔하게 들려오는 파도 소리, 목에 맺힌 땀방울을 씻어 가는 시원한 바람…, 파도에 밀려와 뿌리를 내린 미역과 파래가 해안의 조형성에 초록 색감까지 더한다... 정수리에 소나무 몇 그루가 자라고 있는 꼭두섬에서 월포·두곡 해수욕장은 끝이 난다. ‘머리꼭대기섬’ 으로 해석할 수 있는 꼭두섬은 주민들이 방파제로 연결하면서 육지가 돼버렸다. 길은 마을 언덕으로 연결되는데, 미국마을은 미국의 문화와 전통주택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미국에서 생활하는 교포들에게 건강한 노후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실직적인 인구 유입 효과를 가져 올 수 있게 한 것이다. 정부의 지역특화발전특구법에 따라 군에서 차별화된 사업을 했다. 목재로 된 미국식 주택 21동과 복지회관 및 체육시설들을 조성해 마치 미국마을로 옮겨 놓은 것처럼 보인다. 뒤돌아보면 내륙쪽에 호구산이 다가와 있다. 남해를 대표하는 호구산(618m)은 1983년 11월 송등산과 함께 군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정상부분이 거대한 암봉으로 돼 있다. 남해사람들은 호구산(虎丘山)이 주는 어감 때문인지 그렇게 부르지 않고 한자 ‘원숭이 원’을 써서 원산(猿山), 남산(猿山)이라고 부른다. 납(猿)은 원숭이의 옛말이다. 반농반어인 화계마을의 느티나무는 올해 꼭 590년이 됐다. 사람들은 이 나무의 잎이 피는 위치와 모양에 따라 한해 농사를 점쳤다. 바다 쪽으로 뻗은 가지에서 새잎이 먼저 돋으면 풍어, 육지 쪽 새잎이 먼저 나면 풍년을 점쳤다. 고사하지 않는 한 이러나저러나 풍어·풍년이니 이 나무는 마을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 이번엔 석방렴 두개가 나란히 설치돼 있는 이른바 멀티 석방렴 앞을 지난다. 해안이 너무 커서 초대형 석방렴을 두개를 설치해 더 많은 고기를 잡았다. 호수처럼 조용한 바다에 노도가 보인다. 금수저 김만중은 그러나 서인 가문으로 조선 중기에 발생한 각종 환국(換局)기에 부침을 거듭했다. 특히 숙종과 희빈 장씨 사이에 난 아들의 세자 책봉 문제를 둘러싸고 서인과 남인의 당쟁에서 서인이 실각하자, 자신도 관직을 박탈(숙종 15년·1689)당한 뒤 노도에 위리안치됐다. 정치활동 27년간 세번, 총 4년 6개월의 유배 생활을 했다. 1692년 56세에 세상을 떴다. 남해 사람들은 그를 놀고먹는 할아버지란 뜻으로 ‘노자 묵자 할 배’라 불렀다. 국문소설 ‘사씨남정기’와 함께 어머니에 대한 위로 글인 ‘구운몽’은 당초 노도에서 집필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최근 발견된 서포연보(西浦年譜)에 선천 유배 때 지은 것이 확인됐다. 어느새 남해 바래길 탐방 안내센터에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