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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바래길 다랭이지겟길 11코스, 임진성길 12코스

by 고오메 2023. 7. 23.

남해바래갈 임진성길

 

다랭이지겟길 11코스

여기 남해에서 가장 유명한 가천 다랭이마을을 가지고 있는 곳이 다랑어 지겠길 이다. 이 마을이 사람들의 관심을 타는 것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억척같은 삶을 일궜던 조상들의 생활상을 비추해볼 수 있는 유산, 그 터전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바다를 가지고 있지만 배도, 선착장도 없다. 마을이 위치한 곳이 땅끝 벼랑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해안 절벽을 깎고 그 깎은 돌로 담을 쌓아 논을 쳐 논농사를 짓고 살았다. 한층 한 층 석축을 쌓은 다랑논(명승 제15호)은 그렇게 태어났다. 그때 사람들이 산나물 채집이나 토끼 노루 수렵을 위해 설흘산(481m) 응봉산(471m)을 오르내렸다고 한다. 남해인의 억척스러움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11코스 다랑어 지겠길. 총거리 13.6km, 걷는 시간 5시간 30분 내외, 난이도 별 3개. 배와 바다보다 정작 다랭이논과 산이 먼저였기에 바래길이지만 ‘다랑어 지겠길’이라 한다. 남해 바래길 작은 미술관(평산항 2.5km)출발→유구 방파제(4.5km)-사천해변(1.0km)-선구보건소(1.6km)-항촌(몽골 해변 1.1km)-빛남 촌(2.9km)-가천다랭이마을. ‘평산항 작은 미술관’에서 마을 안길을 따라 언덕으로 올라가면. 작은미술관에는 초대전들이 열리고 있다. 언덕엘 올라 해안선 옆길을 따른다. 짙푸른 바다에 뜬 소죽 도와 죽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해안가 언덕을 따라 즐비하게 늘어선 펜션들은 이국적인 정취를 자아낸다. 집들은 아예 이태리풍으로 만든 것도 있고 정원이 아름다운 유럽풍으로 조성한 것도 있다. 다국적 건축물들이 전시장같이 보인다. 출발 후 1시간 남짓, 전복양식장 옆을 지난다. 고급 해산물인 전복은 대개 바다에 가두리양식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남해에서는 바다가 아닌 육지에 양식장을 설치해놓고 바닷물을 끌어와 전복을 길러낸다. 배를 이용해 연안까지 오가는 불편과 비용을 줄여 원가를 절감하는데 바다 양식장에서 키운 것과 품질 면에서 별반 차이가 없다고. 조금 시간이 지나면 해안초소가 시야에 들어온다. 지금은 거의 쓸모가 없어졌지만 꽤 자주 유용하게 사용했던 시설이다. 1970년대 북한 간첩들이 해안으로 들락거려 골머리를 앓았던 군 당국은 수시로 예비군과 현역을 소환해 이곳에서 보초를 서게 한 곳이다. 이어 사촌해수욕장. 백색의 깨끗한 모래 해수욕장이 송림과 어울려 있다. 숲에는 평상이 있어 여름철 행락객들이 많이 찾는 남해에서 몇 안 되는 명품 유원지라고 알려져 있다. 사촌마을에는 해수욕장 외에도 멀구슬나무가 자란다. 먹구슬, 목 구슬로도 불리는 이 나무의 꽃은 향기가 좋다. 꽃이 지면 열매가 달리는데 가을에 노랗게 익고 겨울에는 구슬처럼 변해 먹고 슬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큰 나무는 보기가 드문데 이곳에는 마을 정자 목으로 대형이다. 또 다른 보호수 팽나무(수령 390년)는 사촌과 선구리를 가르는 산등성이에 있다. 오래전 마을에 호열자(콜레라)가 닥칠 때 이 나무 신이 전염병을 내쫓았다는 전설이 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재 유산인 ‘선구 줄 긋기’를 할 때 이 나무에서 제사 지낸 뒤 출발한다. 산등성이에서 뒤돌아보면 사촌마을 뒷산은 바다고 둥처처럼 생겨 고동산(359m). 고동산 기슭 섬이 정원은 점처럼 작게 보인다. 섬 이정은 오래된 돌담과 연못, 생울타리에 다양한 초본과 억새들로 조성한 유럽식 정원이다. 오른쪽 진행 방향은 응봉산, 더 진행하면 설흘산이다. 정오 지나 언덕을 돌아 넘어가면 깨자 갈 몽돌이 있는 선구마을에 닿는다. 향촌마을까지 이어지는 해안에는 거제 몽돌해수욕장의 몽돌과 비슷한 깨자 갈이 톱을 이루고 있다. 이곳에서도 거제처럼 몽돌이 수난을 당하고 있는지 ‘몽돌 채취금지’ 팻말이 여기저기 세워져 있다. ‘빛남 촌’은 응봉산 쪽으로 올라와 남해 일주도로(1024번)별에 있다. 빛남 촌 위 응봉산 ‘용발때죽’(용발자국)사연은 남녀의 사랑을 전한다. 이 마을에 마음씨 곱고 아름다운 여인이 살았는데 어느 날 응봉산에 터를 잡은 용 한 마리가 이에 반해 빨래하러 온 이 여인을 낚아채 산으로 올라가 버렸다. 그런데 평소 여인을 흠모했던 총각이 이러한 사실을 알고 낙심한 나머지 상사병이 걸려 시름시름 앓았다. 죽기 직전 이 총각은 이판사판 심정으로 여인을 구하기 위해 나섰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죽을힘을 다해 산으로 기어오른 총각은 용의 눈을 피해 여인을 데리고 돌아왔다. 그런데 용이란 녀석이 이 총각의 가상함을 알아차렸는지 어쨌는지 그냥 데려가게 내버려 뒀다고 한다. 이때 남긴 용발때죽이 지금도 찍혀 있는데, 남녀가 사랑을 이루려면 이 용발때죽에 찾아오면 된다고 한다. 몽돌해수욕장을 지날 때면 얼굴이 몽돌만큼 달궈지고 사촌을 지날 때면 발바닥이 간지럽다. 빛남 촌을 떠난 바래길은 어느새 울창한 숲 터널로 들어간다. 경사가 큰 마지막 오름길은 숨이 차오른다. 산을 내려와 다랑어 마을 어귀에서 받을 수 있다. 한눈에 들어오는 시원한 바다, 가슴이 벅차오르고 눈이 시원해진다. 들쭉날쭉 제멋대로 생긴 논들이지만 그 사이사이로 산책로와 전망대가 있어 한층 더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산과 바다, 그 사이 남해사람들이 삶을 영위하기 위해 억측같이 일궈놓은 삿갓배미 다랑논이 언덕 끄트머리에 위태롭게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삿갓배미는 워낙 좁은 벼랑에 논을 치면서 너무 작게 만들어져 삿갓으로 덮으면 안 보일 정도여서 그렇게 불렀다. 다랭이마을 명물인 암수 바위(경남민속자료 제13호)와 밥 무덤 해안가와 정자 등을 돌아보고 뜨거운 태양 아래 힘겨우면서도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랑어 지겠기를 마무리한다.

 


임진성길 12코스

총거리 13.5km, 걷는 시간 5시간 30분 내외, 난이도 별 3개. 남해 스포츠파크(1.1km)-장항 해변(5.8km)-천왕산임도(2.2km)-임진성(1.7km)-오리(2.7km)-남해 바래길 작은 미술관(평산항). 임진성 길’은 이름에서 생각할 수 있듯이 임진왜란 때 왜적을 막기 위해. 쌓은 석성이 있는 곳이다. 보통 성곽들이 높은 지대에 있는 것을 생각하면 이번 길은 해안보다는 주로상으로 돼 있음을 알 것 같다. 성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성곽을 따라 돌면서 옛 선조들을 느껴본다. 풍전등화, 국운의 쇠락을 막고 나라를 지키고자 선조들이 준비했던 성내 우물과 환석 망루 등을 직접 볼 수 있다. 두세 개의 높고 낮은 산을 넘거나 산허리 동그란 길을 절묘하게 돌아서 빠져 나간다. 너덜겅을 가로지르기도 하고 임도의 오름길을 재촉하면서 이 코스가 자랑하는 숲의 신령스러운 기운이 느껴진다. 이곳에 등장하는 산들은 지도상 표기는 봉 전산(191m) 조산(216m) 천왕산(394m)으로 돼 있다. 섬 지역인데도 오래된 수목들이 울창하게 들어차 거대한 밀림지대 같아 보인다. 1960∼1970년대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 편백숲 낙엽송 숲길은 걷고, 보고 숨이 가쁘다. 이국의 고산지대 자연에 와 있는 듯이 한 착각이 들며 실제 이국적인 느낌이 난다. 숲이 산에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스포츠파크 인근 해안을 따라 길게 형성된 장항 숲은 마을에 불어닥치는 바닷바람을 막아준다. 안면 있는 숲은 ‘물건항 방조어부림’을 쏙 빼닮았다. 하지만 이 숲은 수목의 그림자가 바다에 드리워져 바닷고기의 산란장 역할을 하는 방조어부림과는 성격이 다른 ‘방풍림’이다. 숲속 카페인 헐 수 있는 밴드, 더 풀 등에는 화덕피자와 수제비 버거, 분식점이 성업 중이다. 인터넷 덕에 주말에는 전국에서 많은 손님이 찾아온다. 여름철 숲 이용시 2시간에 1만원의 사용료를 내야 한다. 길은 장항마을 뒷산으로 올라간다. 이번에는 임도 양쪽에 편백숲과 낙엽송지대가 반긴다. 숨쉬기가 한결 편해진 것은 마스크를 벗은 이유도 있지만 코로나가 사그라지고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 때문이다. 철 지난 아카시아꽃이 아직 특유의 강한 향기를 뿜어내서 그 향기를 맡으려 큰 숨을 들이킨다. 이 코스에서 가장 높은 해발을 자랑하는 400m 천왕산 허리를 도는 임도는 서상∼덕월마을을 이어주는 소통의 길이다. 얼마쯤 지났을 때 두세 개의 초대형 너덜지대를 가로지른다. 산에서 폭포수처럼 흘러내린 너덜을 관통해 임도를 내고 그사이에 정자를 세웠다. 너덜에 다가가 바위들을 만져볼 수 있다. 이 바위들은 아주 오랫동안 변함없이 이곳에 그대로 있었던 태고의 상징물, 수억 년 세월이 빚은 작품, 성글게 서로 얽혀 있어도 무너진 적이 없다. 가까운 바다 뷰는 그럴듯한데 안개 탓에 여수 등 원경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쉬움이다. 오름길의 끝이 고실치, 넘어가서 남구마을까지는 고도를 차츰 떨어뜨린다. 숲길을 내려와 남해 우리 교회 앞을 통과해 남구마을 앞 도로다. 남구마을 남서대로를 타고 가다가 앞산 오르기 전 배당소류지 부근에는 과거 대장간(대장간)이 있다. 지금은 흔적 없이 사라졌지만 농사일에 필요한 도구인 쟁기와 낫 괭이를 주로 다뤘던 곳이다. 바래 가는 여인들의 호미도 주요 품목이었을 것이다. 남구마을에서 눈 위로 보이는 야산에 임진성이 있다. 남해임진성(南海壬辰城), 임진왜란 때 왜적을 막기 위해 민관군이 힘을 합해 축성한 이른바 민보성(民堡城)이다. 경남도 기념물 제20호로 내성 크기가 1만 6460㎡밖에 안 되고 축성 길이도 300m에 불과해 마치 일반적인 크기의 성을 축소해 놓은 작은 모형 같다. 축성기법상 연대를 통일신라 때 것이라고 하는데 내부에서 어골문 조개무지 기왓조각이 출토돼 고려시대에 무너진 성벽을 다시 수축한 것으로 보인다. 왜적에 맞서기 위해 준비한 10~20㎝ 크기의 투석용 성환, 요즘 말로 짱돌 3000개가 출토됐다. 석문 안에는 제일 먼저 병사들이 사용한 생명수를 담은 집수정이 나온다. 고지대에 고여 있는 물이 신기한데 용출 샘이 아닌 하늘에서 떨어진 빗물이다. 과거 임진성이 위치한 평산만을 옥포라고도 했는데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대승했던 거제도 옥포로 왜군이 쳐들어온다는 전보가 날아들어 남해 옥포로 오인한 주민들이 관군과 힘을 합해 이 성을 쌓았다고 전한다. 오른쪽에 아난티 남해 CC, 왼쪽에 남해 해성중·고교를 지나 평산마을 영역으로 들어간다. 사립인 해성중학교는 1948년 9월 남면 선구리에서 해성중 학원으로 출발했다. 교명 해성(海城)은 ‘바다 가운데 성’이라는 의미, 1920년대 해성소년단이 기원이다. 특성화 교육으로 독서·토론 교육, 영어몰입교육, 농산어촌 연중 돌봄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성리학의 대가 ‘전(傳) 백 이전 묘’가 인근에 있다. 평산마을 앞바다에는 관선 도와 마도 대마도 목도 등 고만고만한 섬들이 점점이 떠 있다. 관선도 는 과거 멀리 있는 바다에 나갔던 어선들이 왕래했던 거점시설이었다. 지금은 방파제로 연결돼 섬의 기능을 잃었다. 도착지 평산마을에 도착한다. 남면 해안도로 끝 지점인 이 마을은 인근에서 가장 큰 포구다. 감성돔 볼락 농어 낙지 문어 등 각종 어류집산지로 횟집이 즐비하다. 이 작은 평산에 8경이 있다. 바닷가 바위와 석벽을 고둥껍데기에 비유한 나산 기암, 불야성을 이룬 고깃배 호주어화, 작지만 아름다운 섬 죽도 청풍, 만도에 부서지는 파도 마도 파서, 고고한 자태의 백로 떼 성수 야학, 망치산 달밤, 망치야 월, 관선도 소나무 관선 노송, 해성고교 앞 오리장 림이 그것이다. 보건소를 새로 단장한 바래길 작은 미술관이 있다. 전시 공간이 부족한 화가들의 작은 문화공간으로 자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