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gle-site-verification=eaHdvJUixnpqgTYDB_dhq3oyya0PVSepu_tk-DhezwM 남해 바래길 본선 동대만길(3코스), 고사리밭길(4코스)
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남해 바래길 본선 동대만길(3코스), 고사리밭길(4코스)

by 고오메 2023. 7. 20.

 

고사리밭

 

동대만길(3코스)

안가 방풍용으로 심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에서는 정자나무 역할을 하며 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밑동에서부터 가지가 11개로 갈라진 특이한 수형과 이순 신나무 500년 고목 등의 이유로 천연기념물 299호로 지정됐다.

속금산 중턱 임도에서 울창하게 자란 편백나무숲을 볼 수 있으며, 상쾌함, 이온이 나올 것 같은 ‘맑음’이라는 숲의 느낌이 있다. 산도 곱고 개를 넘어가는 소로길 300m 구간과 과하게 가파른 임도 구간 100m를 제외하고는 15㎞에 달하는 전 구간이 임도와 도로로 구성돼 있어 MTB 자전거 행도 가능할 거 같다. 흙과 자잘한 자갈이 깔린 임도는 짜릿한 MTB의 장점을 살리며 라이딩을 즐길 수 있다. 또한 동대만 길은 남해지역에서 최초로 청동기시대 비파형 동검이 발견된 당항리 일원을 지난다. 창선면 행정복지센터 앞 출발(3.8km)→대방산임도(3.8km)→속금산임도(1.2km)→당항(2.6km)→대 벽(1.7km)→단항(1.9km)→창선대교 단항검문소, 총거리 15㎞ 5시간 30분 내외, 난이도 ★★★ .창선면 행정복지센터에서 출발. 면 소재지 상죽마을은 예부터 호음 동산 죽촌 하죽 4개 마을이 있었으나 ‘대나무가 많은 촌락’이라는 뜻의 죽촌마을이 대홍수로 없어지고 이후 3개 마을만 존속하다가 1919년 행정구역 개편 시 ‘상죽’으로 자리 잡았다. 들녘 가운데 창선초등학교를 두고 면 소재지에서 500 m 정도 진행한 뒤 도로를 벗어나 왼쪽 사이 길을 따라 올라간다. 첫 번째 오름길, 길은 양옆으로 숲이 우거진 임도로 바뀐다. 1㎞ 거리 오름길에 끝에 서면 전망이 활짝 트이고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는 공간이 나온다. 운대암에서 세운 것으로 보이는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에게 귀의한다’는 입석이 시선을 잡는다. 이때부터 내리막길이다. 고불고불 이어진 길, 곧이어 옥천수원지·운대암 입구에 닿는다. 두 번째 오름길,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좁은 산길에다 경사가 급하다. 이 숲길을 헤치고 나오면 반가운 대방산 임도다. 바래길은 임도에서 오른쪽으로 틀어 내려간다. 인공적인 것이 없는 편백 숲길이 무려 4.5km 늘어선다. 임도를 벗어나면 율도로로 넘어가는 지방도 ‘율도로’를 만난다. 도로를 200 m 정도 거슬러 올라간 뒤 다시 오른쪽으로 꺾어 소로에 들어간다. 밭둑 사이로 경운기 운행이 가능한 길이어서 주행에는 별 어려움이 없다. 해안도로인 동부대로, 목화주유소 부근에 닿는다. 세 번째 오름길은 목화주유소에서 국도 3호선(동부대로)을 따라 200 m 지점까지 간 뒤 산길로 방향을 잡는다. 3년 전 이 길 동부대로 중간에서 위험도로 개선공사를 하다가 기원전 4~5세기 청동기시대 묘역시설을 갖춘 지석묘 등 2기의 무덤과 비파형 동검, 석부 등 다수의 유물을 발굴했다. 특히 비파형 동검이 3조각으로 나뉘어 부장됐는데 이러한 양상은 ‘제의 행위’(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종교 행위)의 결과라고 한다. 비파형 동검 길이는 26㎝, 남해지역에서는 최초로 출토된 청동제 유물이다. 남해군에서도 청동기시대 유력한 지배집단의 실체를 알려주는 자료가 처음으로 확인된 것이다. 동부대로를 떠나 왼쪽 산길로 올라가면 SUV 차량이 겨우 올라갈 수 있는 경사 큰 임도가 나온다. 이 코스 마지막 재를 넘어선다. 왼쪽이 대사산, 오른쪽이 연태산(340m)이다. 높은 산지 재임에도 물골이 나 있고 군데군데 물이 넘친다. 다가가 보니 늪지대였다. 돌담을 쌓은 전답으로 과거 논농사를 지은 흔적이 분명했다. 꽤 넓은 계단식 논이 100 m 정도 이어진다. 적어도 수십명이 농사짓고 살 수 있는 청학동 같은 곳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숲을 걷는 동안 숲을 바라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스트레스가 풀어지며 호르몬 농도도 낮아지고 긍정의 감정이 생길 것 같다. 숲은 그렇게 생활에 찌들어 아귀다툼하며 살아가는 도시인들에게 휴식을 주는 어머니 품속 같은 곳이다. 산에서 내려온 길은 대초도 소초도 미니 섬 2개가 쌍둥이처럼 마을 앞을 지키고 있는 단항마을 해안으로 연결된다. 이 마을에 남해의 자랑거리 왕후박나무가 있다. 타원형의 수형이 아름다워 멀리서도 단번에 알아볼 수 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그늘 밑에 쉬었다는 전설이 있다. 난중일기에는 이순신 장군이 1592년 5월 29일 새벽 좌수영을 출발해 지금의 노량에서 원균을 만나 왜군과 전투를 벌인 것으로 돼 있다. 또 1592년 7월 6일 한산도로 향하던 중 창선도에 하룻밤을 머문 기록도 나온다. 적어도 한차례는 이곳에 들렀을 것이라는 염원이 전설이 됐을 수도 있다. 현재 수령이 500년이니까 1592년이라면 당시 이 나무의 수령은 80년이다. 또 다른 이야기는 이 마을에 살던 늙은 부부가 큰 물고기를 잡았는데 그 배 안에 씨앗이 들어 있어 이를 땅에 심었더니 지금의 왕후박 나무로 자랐다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매년 나무 앞에서 평안과 풍어를 기원하는 제를 올리고 있다. 또 하나, 우리가 알고 있는 ‘울릉도 호박엿’의 원조가 후박나무 진액과 열매로 만든 엿이다. 후박이 호박으로 바뀐 케이스다. 바다 위 창선대교가 붉은 태양처럼 떠오른다. 대교 밑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계단을 올라가면 창선면 육교 치안센터가 나온다. 남해 바래길 동대만 길 종점이다.

 

동대만길 대벽리에는 수령 500년이 넘은 천년 기념물 왕후박나무가 있다. 남해 물건방조어부림이나 미조면 상록수처럼 해

고사리밭길(4코스)

고사리밭 길은 국내 최대 고사리 산지답게 온통 고사리로 가득 차 있다. 바래길을 걷는 내내 머리 위와 발아래 싱그러운 초록의 바다가 펼쳐지면서 역시 원초적 초록이라고 불러야 할 거 같다. 남해 바래길을 통틀어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코스가 이 코스다. 다랑논이 과거 억척스러운 남해사람의 삶의 현장이라면 고사리밭은 최근 들어 만들어진 삶의 현장으로, 부지런한 남해인의 태생설을 보여주는 것이다. 2000년대 웰빙 식(食)문화를 타고 고사리가 최고의 인기를 누리자 지리·환경 면으로 최적의 조건을 갖춘 남해 창선에 고사리 재배가 여러 군데 성업했다. 초창기 산에 대한 무분별한 벌목행위가 빈발해 여러 행정적 조치가 있었으나 곤 생업의 터전으로 자리를 잡고, 생업을 바다에서 산으로 옮겨진다. 이 코스 ‘가인리 공룡 발자국 화석 산지’는 빼놓을 수 없는 명물이며, 바닷가 좁은 면적에 여러 종의 공룡 발자국이 동시에 산출돼 당시 공룡의 종류와 생태연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2008년 12월 문화재청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면서 사람 발자국 모양의 공룡 발자국이 연구되었다. 국내외 많은 학자가 아주많은 관심을 보인다. 적량마을 출발하여(4.6km)→천포마을(여튼계 1.6km))→가인(공룡 발자국 화석 산지 4.3km))→식포(4.0km)→동대만 간이역(0.8km)→창선면 행정복지센터. 총거리 15.4㎞ 6시간 30분 내외, 난이도 별 4개. 적량마을에서 출발한다. 이 마을에는 임진왜란 때 쌓은 적량 성터를 비롯해 당시 사용했던 약수터 굴한 등 역사 문화시설들이 많다. 마을을 지나 적량 보건소 앞을 지나 뒷산으로 오른다. 입구부터 ‘고사리 채취금지’를 경고하는 각종 현수막이 눈에 들어온다. 고사리 채취 기간은 3월 28일부터 6월 24일까지 3개월 동안은 사전 예약자만 반드시 지정된 안내인 동반하에 재배농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주 4회( 화·목·토·일)만 걸을 수 있으며 (식포에서 세심사 구간) 1일 최대 40명까지 사전 예약을 통해 바래길 주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숨이 가쁠 정도의 오르막엘 올라서면 본격적인 고사리밭 길이다. 채취 철이 지나 잎이 퍼져 사람의 키를 훌쩍 넘는다. 자세히 보면 그래도 늦게 올라오는 새순도 있다. 아이가 주먹을 꼭 쥔 것처럼도 보이고 음 계표를 닮기도 했다. 고사리 어원이 재미있다. 고사리 끝이 원형으로 말려 곡사리라고 부르다가 ‘ㄱ’이 떨어져 고사리가 됐다고 한다. 남해 창선도에서 고사리를 본격적으로 재배한 것은 1980년대, 식포 마을 주민이 병해충이 극심한 감 농사를 포기하고 고사리를 재배했다고 한다. 전국 고사리 생산량의 30%를 차지하면서 봄에 채취하며 전량 창선농협에서 수매한다. 농협에서는 올해 초 총 93t, 80억원어치의 고사리를 수매했다. 출하 농가 수는 1200명이지만 고령화로 인력 부족이 심화해 농사를 포기하는 곳이 점차 늘고 있다. 남해 창선 고사리에 대해 “최고 품질”이라고 극찬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중국산 고사리가 연중 4000∼5000 t 정도 수입되고 있으며, 수백t에 불과한 남해 등 국산 고사리는 ‘금 고사리’ 대우받고 있다고 한다. 고사리밭과 함께 바다 전망이 확 트이는 전망대가 나온다. 언덕에 큰 수목 몇 그루가 듬성듬성 서 있는 모습은 이국적이다. 여든계라는 이름이 붙은 천포마을로 내려선다. 이때부터 도로를 따라 걷는다. 여든계는 마을 앞 바다가 깊지 않고 얕다는 의미가 담겼다. 이 코스에서 만나는 마을의 이름 ‘고두’는 농토에 농사를 지으며 외롭게 살아가는 빈촌이라 하여 ‘옛 고(古)’ ‘섬도(島)’를 써서 ‘고도’라 불렀다. 훗날 어렵게 살던 그날을 잊지 말자고 돌아볼 고(顧) 머리 두(頭)를 써 고두라 고쳐 부른다고 한다. 반면 ‘식포’는 바다와 논밭이 앞뒤로 펼쳐져 있어 해산물 농산물이 풍부한 곳이라는 의미이며 엄포는 언덕을 낀 마을, 출발지 적량은 양 씨들이 터 잡고 산 마을이라는 의미이다. 가인리 해안에 공룡 발자국 산지가 이 코스에 재미를 더한다. 데크로 따라가다 해안에 내려서 경사진 길을 걷다 보면 범상치 않은 모습의 공룡 발자국이 나타난다. 창선면 가인리의 북쪽 해안에 함안층의 최상부에 해당한다. 암질은 사암으로 암회색을 띠고 있다. 중형 용각류 공룡 발자국 화석으로 발자국 22개가 동에서 서로 이동하는 게 찍혀 있다. 발자국의 길이가 55㎝, 폭이 40㎝이며 보폭은 약 200㎝이다. 조각류 공룡 발자국 화석 하나는 3개의 발자국이 암반 상단에서 좌로 이동하고, 이보다 서쪽에서 같은 모양의 발자국 4개(2개는 서로 겹침)가 보인다. 아마도 한 마리의 공룡에 의해 찍혀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수각류 화석 둘은 발자국 형태가 사람 발자국과 비슷해 관심의 대상이 됐던 종이다. 6개의 보행렬을 보여주고 있으며 총 45개가 관찰된다. 발자국의 길이는 평균 27㎝이며, 폭이 12㎝이다, 보폭은 평균 50㎝ 전후이다. 발자국의 모양과 보폭에서 사람의 그것과 매우 닮았다. 실제 이곳에 세워져 있는 안내판에는 사람 발자국 같다고 표기해 놓기도 했다. 1996년 발견 때 익룡의 발자국으로 발표한 적이 있으나 그 후 관련학자들과 여러 차례 토의한 결과 새로운 종의 수각류일 것이라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사실 현실적으로 공룡시대에 사람 발자국이 찍힌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화석 산지가 끝나면 해안을 따라 걸으며 바다의 쳐다볼 여유도 있다. 거북손과 배 말도 바지락 등이 눈에 띈다. 하지만 낚시 및 채취를 금하고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자연석 채취도 제한돼 있다. 바래길 ‘변해도’라는 소공원도 볼거리다. 한자 고사리 별, 바다 해(海), 길로(路), ‘고사리 언덕과 바다를 경험하는 여정’이라는 의미다. 이곳에 최고의 고사리 전망대가 있다. 파도와 고사리를 형상화한 소공원에 올라서면 광활한 고사리 바다가 펼쳐진다. 바다와 어울려 있는 고사리밭, 산과 어울려 있는 고사리밭, 길과 어울려 있는 고사리밭, 고사리밭 천지다. 고사리 풀 향기가 코끝을 스치고. 안개비로 인한 다습한 기온 탓이기도 하지만 알싸한 고사리 특유의 향이 진동한다. 남해 건너 지리산 기슭 청학동 시골에서는 고사리와 고비를 ‘고사리’ , ‘게비’로 불렀다고 한다. 노인들은 ‘깨 사리’라고 부르고. 그 깨 사리라 수입원이 되었다고 한다. 앞뒤 옆집 마을 아주머니들 이른 새벽 동이 트기 전에 산에 올라 봄나물을 뜯고, 점심은 주먹밥에 된장, 즉석에서 곤달비와 참나물 취나물을 뜯어 개울가에 앉아 먹었으며, 노인들은 온종일 산을 뒤져 그 고사리와 고비를 땄다. 땅거미가 질 무렵 집으로 돌아온 고사리를 가마솥에 삶아낸 뒤 뜨끈한 방 아랫목에 널어 말렸다. 상품이 된 고사리는 마을에 오가는 보따리 장사 손에 도회지로 팔려나갔다. 아이들은 고사리 말린 방에서 고사리와 함께 자란다. 바래길 고사리밭 길은 창선파출소 앞에서 끝난다.